신성한 폭력?

[르몽드] Une violence divine ? (2015.12.27)

신은 계몽된 우리 서구에서 물러난 것 같았다. 신은 세계화 된 우리 지구촌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2015년 그 무수한 살인이 유럽의 심장부에서 신의 이름으로 돌아와서 자행되었다. 단지 파리시 내에서 1월의 테러 그리고 11월 13일의 참살, 근동(역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국가) 지방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유혈 충돌은, 세간의 중심에 테러와 신앙 간에 관련된 의문을 다시 일으켰다. “모든 종교는 희생양 위에 세워진다”를 쓴 최근에 사망한 철학자 르네 지라르(1923-2015)는 폭력과 신성에 대한 질문을 그의 사유의 깊은 곳에서 던졌다. (르 몽드 2015년 11월 5일자)

유일하고 전능한 신에 귀의하는 종교, 유일신교 중 주요 종파들은 이제 심판대에 섰다. 그 시대의 역사적, 정치적인 입장을 넘어서, 전지전능하고 높으신 힘 “하나”라는 바로 이 생각이 신앙의 역사를 따라 자주 기록된 잔혹함의 근원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군대”에 의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십자군과 종교재판, 지하드와 테러리즘은 계시 종교의 유전병 같은 것인가? 또는, 평온하고 비무장의 안식처에 있는 유일신 교리에 비해 일탈인 것인가?

바타끌랑 사건 이후로 슬픔에 잠긴 이 축제 시기에 이 질문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 우리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전문가, 문학 비평가, 민족학자, 그리고 성경 텍스트를 자세히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을 돌아보았다. 유일신교 안에서 무엇이 폭력을 일으키는 주범인가를 듣기 위해서이다.

진짜 그리고 가짜 종교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많은 신들까지 배척하기를 사람들에게 설파했던 구약의 모세 5경에서, 시나이 산 위의 모세가 한 것이 진짜와 가짜 종교의 구분인가? 라고 독일의 이집트 전문 고고학자 얀 아스만이 자문했다. 성서학자 토마스 로머는 다양성에 개방되어 있고 평화롭다는 유일신교의 잊혀진 전통이 “종교 배타주의”의 견해와 나란히 성경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글과 그것의 해석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마나 시랄리는  현재의 이슬람 세계을 위협하는 “신성시 되는 지식”의 위험을 강조한다. 비평가 윌리엄 마르스는 무슬림을 “낙인찍혔다”거나 “순수 원리주의”에 갇혔다라고 보는 그녀의 입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신들의 전쟁에 대항해서, 민족학자 마르크 오제의 예처럼, 포교에 저항하며 “이교도 지니”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가?

성경, 코란 또는 토라라는 주요 유일신교의 성서 중 어느 것도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날 “억척스런 원칙주의 해석의 경향”속에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유대인 역사학자 쟝 크리스토프 아티아가 지적하며, 해석으로 부터의 “비무장화”를 호소했다. 적은 유일신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형태의 아래에 있는 원칙주의라고 얀 아스만이 요점을 말했다. 모든 종교의 다양성에 열려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라는 권유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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